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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비평] 페미니즘에서의 고전의 의미

기사승인 [209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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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고전과 동시대

   
  △ 사진출처 : Shutterstock  

   ‘고전’이라는 말을 ‘페미니즘’ 속으로 들여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전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고전이라는 반열 속에 여성 저자의 글이 들어가 있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일 정도로 ‘고전’은 여성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 동안 여성들은 문자에 접근할 수 없었으며, 학문과 지식의 세계는 오직 남성의 목소리로만 이루어져 왔었다. 여성이 문자를 사용하고, 여성이 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갖게 되고, 또 여성의 이름으로 책이 출판되는 것 자체가 근대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상당한 투쟁을 거치고 난 이후에야 이루어진 일이다.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 중 하나인 매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는 1792년에 출판되었다. 우리가 인류(남성)의 고전이라고 일컫는 글들이 기원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비교해 보라.

   페미니즘 속에서 고전은 ‘고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를 넘어선다.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를 어원으로 하는 고전은 모범이 될 만한 속성을 지닌 것,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소진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고전을 읽는 독자들은 고전 속에서 심오한 의미를 해석하고, 그 의미의 깊이를 찬양하는 역할을 맡지 않는다. 오히려 고전의 한계를 이해하고 그것에 도전하며 그것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독자에게 부여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페미니즘의 사유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의 텍스트들은 학문의 장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여성의 역사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페미니스트들은 특권적 학문의 장에서 사변적 사유를 통해 앎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예속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운동의 한 가운데 속에서 앎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텍스트는 감정이 제거된 차갑고 정제된 형태가 아니며, 오히려 자신이 (금지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긴장감과 떨림, 불안함과 기대가 가득 차 있다.

   이런 점에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집결된 여성들의 목소리와 페미니즘 고전의 저자들의 목소리에는 비슷한 면이 있다. 시위 현장의 연단에서 서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지금껏 자신에게는 주어지지 못했던 목소리를 낸다는 긴장감으로 떨리곤 한다. 그리고 문자언어라는 여성이 오랫동안 소외되어온 영역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페미니즘 고전의 저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떨림과 긴장, 머뭇거림을 느낄 수 있다.

   인류사에 있어 페미니즘의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페미니즘 관점이 최근에 이르러서야 학문 영역으로 진입하였기 때문에 누군가는 “페미니즘에 고전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페미니즘의 고전을 만들어 내고, 그것의 계보를 그려 나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페미니즘적 도전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의 고전은 박물관의 유리 안에 전시된 고문서처럼 보존 되는 것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앞으로의 여성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도전 받을 수 있는지에 따라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고전으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정유진 여성학 연구활동가

<저작권자 © 동국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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