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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묘] 기후변화와 우리의 삶

기사승인 [209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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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시즘의 변종들과 구성적 인간론

   
  △ 사진출처 : pixabay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는 인류사에 기념이 될 만한 아주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국가간기후변화협의회,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이하 IPCC)>의 「지구온난화1.5℃에 대한 특별보고서」가 채택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이대로 탄소배출이 계속 이루어지면 2040년 이후 1.5℃의 기온상승은 예견되어 있는데, 사실상 1.5℃ 상승 이후의 국면은 인류의 통제권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점에 대한 명시였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의 절박한 상황에 대해서 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행동을 촉구한 것이었다.

   그 후 2019년 5월,《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에서 『실존적인 기후 관련 안보 위기 - 시나리오적 접근』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호주보고서에서 놀라운 점은, 앞서 IPCC보고서마저 나이브한 수준이며 인류가 행동에 나설 시간은 10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하지 않는다면 인류라는 종 자체는 멸종으로 향하는 경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는 가용한 자원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가히 안보위기에 준하는 기후위기 국가비상사태에 돌입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미 영국, 캐나다 등의 전 세계 16개국과 800여개 지방정부에서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문지상에서 연일 보도되는 지구의 이상증후는 수천 가지다. 북극이 거의 녹았다, 2019년 여름 유럽은 48℃ 폭염을 기록했으며, 인도는 50℃였다, 태풍과 허리케인은 상상을 불허하는 규모로 불어닥쳤다, 아마존이 불타고 있다, 등등…….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 채, 여전히 전과 다를 바 없이 유지되고 지속되는 상황이다. 기후위기는 탄소소비에 의해 이루어진 문명 자체의 전환이 없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 자동차, 육식, 일회용품, TV, 가전제품, 냉난방기 등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더불어, 탄소소비를 통해서 유지되어 오던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세먼지와 기후위기의 주범인 석탄화력 발전소는 2018년 기준 전체 전력량의 42.7%를 차지하고 있고, 더욱이 12기가 신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 세계 100대 기업이 탄소배출의 71%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탄소세, 기후세, 육류세, 생태세를 통한 규제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기후위기로 인한 기후난민의 상황은 탄소소비와 거의 관련이 없는 제 3세계 민중들이 최대 피해자가 되는 기후정의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인류는 끝났고, 이제 즐기다 가는 것만이 남았다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다. 즉, “될 대로 되라”식의 논리에 따라 이제 포기하라는 메시지가 사방에서 발신되고 있다. 자연과 생명의 도구화를 통한 성장주의 파시즘과, 인종주의와 난민에 대한 분리차별로 이루어진 극우파시즘, 4차 산업혁명을 가장하여 포스트휴먼으로서의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는 기술파시즘 등과 더불어 인간은 지구에 붙은 벼룩이나 암세포와 같다는 에코파시즘까지 가세하여 인류에 대해서 포기를 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파시즘의 기저에는 인간 종에 대한 절망과 좌절, 비관, 그래도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 등이 뒤섞여 잡탕을 이룬다. 파시즘은 증오, 폭력, 혐오, 차별, 분리, 배제 등의 방법론을 통해서 사랑과 욕망, 정동(affect), 돌봄 등으로 이루어진 인류문명 전반에 대해서 비아냥거린다.

   이런 점에서 인간도 사회도 공동체도 미리 주어진 선험적인(a priori)한 전제조건이었던 근대사회의 상황은 끝났다. 인식론, 존재론, 논리학의 논증구조가 갖고 있는 근대적 주체철학에서의 인간에 대한 설명방식은 낡은 것이 되었다. 헤겔처럼 인륜적 공동체가 미리 전제되어 있어서 모순과 대립조차도 사회의 성숙으로 향한다는 낭만적인 변증법은 완전히 파산한 상황이다. 오히려 대립과 모순은 내전, 전쟁, 테러 등의 사회분열로 향할 뿐이다.

   인간은 이제 전제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결론이기 때문에 구성적인 실천의 역할이 크다. 인간은 어떻게 구성될까? 바로 자연의 시중꾼, 대지의 양육자, 생태계의 특이점, 동물의 대리인으로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 등의 정동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러한 정동을 통한 우리의 삶과 공동체, 사회를 재건하고 구성하는 것이 바로 기후위기 시대의 인간의 결정적인 역할일 것이다.

   캐나다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2016, 열린책들)에서 기후위기의 상황이 절망적인 좌절의 순간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양식과 사회시스템 전반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일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2019년 9월 23일로 예정된 기후정상회의에 앞서, 전 세계 시민사회와 더불어 한국에서 2019년 9월 21일 시민종교단체가 주도하여 피켓을 들고 나서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삶의 양식 그리고 사회시스템, 제도 등은 이 기후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사랑, 욕망, 정동의 구성적 실천에 따라 재창안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떨어지는 비행기 인류를 행성 지구에 연착륙시켜 살아남게 할 것인가? 조종간은 여러분 자신에게 있다.

신승철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소장,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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