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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멀리 돌아가더라도

기사승인 [217호]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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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이 어그러졌다. 석사 과정을 수료한 지 반년이 흘렀다. 계획대로라면 석사 마지막 학기에 논문을 완성해야 했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혹은 그렇다고 합리화한 뒤 한 학기 유예했다. 포기하고 취업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선배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끝까지 써보기로 했다. 변경된 계획안은 상반기에 논문을 통과시키고 하반기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애초 계획보다 1년이 밀려났다.

   시간을 더 할애했지만 이번에도 끝을 내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커져가는 취업 압박, 단조로운 일상에 대한 피로감, 부족한 논문 작성 능력 등 변명거리는 많지만 어느 하나 성에 차지 않는다. 결국 의지박약한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힘든 순간마다 도망쳤다. 그 순간만큼은 도피라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것이라고 짐짓 확신했다. 현 대학원 전공도 두 개의 학부 전공을 거치고 나서 선택한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학원을 진학하며 더 이상 그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증표로 논문을 완성하고 학위를 따내고 싶었다. 가고자 하는 길에 학위가 필수는 아니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서 얻어낼 수 있는 자기효능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믿기 어려워졌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다고, 취업에서도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싶어졌다. 이미 지쳐버린 마음에 더 이상 과부하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새로운 도전 거리를 찾기도 했다. 목표를 수정하고 열정이 되살아났지만, 예전과 다르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 선택이 도전인지 도피인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지원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마쳤다. 상담은 총 8회기였고 주제는 진로 변경이었다. 지금까지의 이력을 설명하며 상담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상담사는 경청한 뒤 내게 진로를 변경할 때마다 보이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새로운 관심사에 몰입하게 되는 지점이 무언가에 가로막힐 때와 시기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도피에 무게를 둔 이야기였다. 짐작은 했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상담을 받는 동안 또 다른 내면을 마주하기도 했다. 전공에 대한 열정이 아직 남아 있고, 돌아가더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존재했다. 우회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감지한 것이다. 바로 앞만 응시하며 조급해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멀리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행위가 도피에 대한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지 모른다는 희망을 놓칠 수 없었다. 희망을 따라가는 동안 여전히 헤매고 숱하게 넘어지겠지만,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얼마 전, 지원했던 회사로부터 합격 소식을 들었다. 면접 당시 자기소개서의 한 문구가 마음에 든다던 면접관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무관해 보이는 전공을 당사 계열과 연결한 표현이 회사가 추구하는 태도와 통한다고 말했다. 결국 맥락을 만드는 건 현상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달린 듯하다. 대학원을 다니며 종종 들었던 조언이지만 이제야 어렴풋이 실감할 수 있었다. 공부란 이론에 그치지 않으며, 삶의 맥락을 만들고 실천해가는 것임을. 이를 마음 깊이 새기며 멀리 돌아가더라도 지금의 과정을 이어가기로 다짐해본다.

익명 대학원생

<저작권자 © 동국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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