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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육식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사승인 [217호]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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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에는 돼지 막창을 먹었다. 주말 이후로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는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체질적으로 돼지 고기가 몸에 안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돼지 고기를 계속 먹는 건 맛있기 때문이겠지. 기름진 음식에 알코올 한 잔을 기울이는 것은 내 삶의 재미 중 하나다.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육식주의자다.

   그러나 이런 나의 육식 행위가 점점 부끄러워진다. 불과 며칠 전까지 돼지 막창을 맛있게 먹은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도 부끄럽지만 말이다. 채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동물보호는 물론 환경부터 인권까지. 채식은 사회 속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채식은 곧 평등이다. 육식 문화 사회에서 평등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환경에 대한 착취는 곧 인간의 착취로 이어진다. 모든 종류의 억압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난 이상 이 문제를 언제까지고 흐리게 대할 수는 없다. 맛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육식을 지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학부시절 일이 생각난다. 콘텐츠 수업 발표 시간이었다. 나는 비건을 주제로 콘텐츠 아이템을 발표했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비건에 대한 생각과, 그것을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교수는 내게 ‘정의의 사도 같은데 직접 비건 레스토랑을 운영해보지 그래요?’라며 발표 내용과는 전혀 관련 없는 피드백을 해주었고 한 남학생은 내게 ‘식물은 안 불쌍하냐’라고 말했다. 내가 그 수업에서 A+을 받은 것과 별개로 나는 그 날의 일을 잊지 못한다.

   내가 채식주의자였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스스로에게 찔려서 바보 같은 질문에 똑같이 바보처럼 답하진 않았을 텐데. 분노보다는 굴욕감이, 황당함보다는 수치심이 혀를 굳게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자신은 비건이라며 내 발표에 대한 피드백을 개인적으로 전달해주었다. 나는 그와의 짧은 대화 속에서 그가 채식주의자로 어떻게 살아왔을지, 또 앞으로 채식주의자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던 거 같다. 나는 그의 피드백이 무색하게 지금까지도 육식주의자다.

   아파트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때마다, 친구들이 보내는 개 사진을 하나씩 저장할 때마다, 더 이상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원을 가지 않는다고 말할 때마다, 플라스틱을 줄이자고 말할 때마다, 학교에서 인권을 공부할 때마다, 나는 패배감과 동시에 수치심을 느낀다. 육식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건 모순의 연속이다.

대학원 신문사

<저작권자 © 동국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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