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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우리, 지금 여기서 보는 것

기사승인 [217호]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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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간 비가 왔고 여름내 돌아가던 에어컨을 껐다. 창문을 여니 물기 있는 바람이 훅 들어온다. 공기가 선선하다. 계절과 계절의 사이 자연스러운 연결은 공기가 한다. 이 공기는 보이지 않지만 알 것 같은 것. 예감이다. 오후에는 모처럼 카메라를 들고 한강을 걸어보려 한다. 나는 일이나 프로젝트가 아닌 일상에서 카메라를 잘 들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어떤 날은 문득 사진이 찍고 싶어진다. 오늘처럼 카메라를 들고나가는 날이 그렇다. 무언가 찍을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준비를 마친 후 집을 나서기 직전, 거실에 앉아 새 필름을 뜯어 카메라에 끼워 넣었다. 카메라 필름실에는 서른여섯 장의 셔터를 누를 수 있는 빈 공간이 길게 늘어진다. 아직 찍히지 않은 필름은 미래의 일부이다. 이제 필름실 뚜껑을 닫으면 미래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침묵한다.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거기서 기다린다.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미래는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낮의 한강은 조용하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스쳐간다. 벤치에 누워 신문을 보는 할아버지도 있다. 종이 신문이 귀한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지나친다. 검정 잠자리는 사람을 피해 자리를 옮기고 나는 걷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길을 걷는다. 걸음을 걷다 보면 무언가 하릴없이 보는데 대체로 무심코 보다가 집중해서 보게 된다. 길에는 군데군데 나무가 심겨있다. 시선을 옮겨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다가, 그 너머 강물을 보고, 물결 따라 산란히 반사하는 빛을 보고, 빛 사이 이리저리 옮겨 헤엄치는 작은 벌레를 가만히 보았다.

   무심히 보든 유심히 보든 모든 사람은 각자 나름의 보는 방식이 있다. 어릴 때는 나의 시선과 옆 사람의 시선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풀과 친구가 보는 풀이 같은 풀이라고 여겼고, 어깨를 기대고 나란히 지는 석양을 바라볼 땐 우리가 같은 붉음을 보는 줄 알았다. 눈가에 맺힌 빛이 말을 하지 않아서 멋대로 착각했다. 각자의 시선은 각각 다른 이야기로 해석한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은 사실 눈의 일이 아니라 마음의 일이라는 것을.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도달하지 않는 질문은 답이 없다.
   우리는 세계의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나는 한동안 한강의 물결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겨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예감이 빗나갔다.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 예전엔 억지로라도 찍으려고 했던 때도 있다. 필름 장 수를 끝까지 채우기 위해 공셔터를 날릴 때도 있었다. 둘 다 뭐라도 남겨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멋지게 찍으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애써 꾸며놓은 사진은 자유롭지 않았다. 애매하게 놓친 장면도 있다. 놓친 장면은 앞으로도 찍을 수 없다. 지나치게 완벽해서 찍지 못한 순간은 오히려 많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아이의 웃는 순간이 그렇다. 누군가는 사진에서 결정적 순간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런 순간을 믿지 않는다. 내게는 오히려 사진 밖의 순간이 결정적일 때가 더 많았다. 우리에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장면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순간마다 흘러가지 않는가. 결정적 찰나가 해일처럼 지나가면 그 흔적을 따라 찍는 일이 더 빈번했다.

   그럼에도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슨 대단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만 나를 향한 질문의 답이 거기 있어서일 뿐이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순간이 즐겁다. 내가 나를 둘러싼 세계를 감각하는 방법, 삶 곳곳에서 마주친 대상을 사랑하는 방식, 결정적 순간이 지나간 흔적이라도 담은 행위가 말해주는 무언가가 이미지에 있다.

   사진에는 응시하는 눈이 있고, 눈의 방향은 매번 마음의 방향을 대변한다. 사진에는 마음을 관통하는 시선이 있다.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기 이전, 장면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야가 있다. 한결같은 사진을 찍는 사람을 생각한다. 내내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번번이 달라진다. 달라짐을 고스란히 남긴다. 사진으로 나를 돌아본다. 지나가버린 수많은 견딤과 수많은 소망을 생각하며. 나아갈 미래는 지금과 같을까.

   

   문득 주위가 어두컴컴해진 기분이라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해가 나지막히 가라앉고 사물의 경계가 역광으로 섬세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나는 지금 현재. 아름다움으로 미래를 예견한다. 내가 바라보는 이 순간을 소유하고야 말리라는.

   카메라를 들어 파인더를 통해 눈앞의 장면을 응시한다. 주위가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호흡을 멈춘다. 기이한 적막 속에서 순간, 철컥. 시간을 가르는 소리. 셔터를 누르는 행위로 과거를 수집한다. 필름의 빈 공간에 상이 새겨진다. 흐르던 시간이 필름 위에 포개진다. 과거는 한 줌 손에 쥐어지는 방식으로 미래에 모아진다. 이로써 필름에 맺힌 작은 그림은 네 모퉁이가 예리하게 잘린, 지나간 세계의 단면이다.

   

신혜림 사진작가

<저작권자 © 동국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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