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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역사 수업에서 ‘이완용’을 나쁜 사람으로 가르쳐야 할까?

기사승인 [219호] 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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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유치원생인 딸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완용은 매국!’이라고 흥얼대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이완용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좋을까?’라는 질문이 문뜩 머릿속을 스쳤다. 누군가에게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할 수 있다.

   즉, 이완용은 민족을 배반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잘못된 행동을 학생들이 분명히 알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당연히 이완용이 비판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과거 인물의 행위에 대한 특정한 도덕적 판단을 학생들에게 강하게 주입 혹은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한 역사 교육일까라는 물음을 갖고 있다. 이를 조금 더 역사철학적인 질문으로 바꿔보자면, ‘과연 과거 인물의 행위를 오늘날의 도덕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가?’

   논쟁적인 역사적 인물에 대한 현재의 도덕적 평가 문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의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크게 대립하는 입장으로는 역사주의와 현재주의가 있다. 역사주의는 과거의 인물을 그가 처했던 당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과거 인물의 말과 행동을 그가 살았던 사회의 가치와 통념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주의는 ‘과거를 과거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을 추구하므로, 현재적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을 오류라고 판단한다. 이 입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이는 ‘도덕적 가치는 시기, 장소마다 변한다’는 명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따라서 역사주의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내포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반대로 현재주의는 현재의 윤리적 가치를 기준으로 과거 인물의 행위를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주의는 보통 보편적인 윤리적 가치의 존재를 전제한다. 즉 현재주의는 현재 자신이 속한 사회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모든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생명 존중, 인권, 자유, 평등, 평화 등이 흔히 보편적인 것으로 언급되는 가치이다.

   역사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현재주의의 ‘오만함’을 지적한다. 각 사회마다 도덕적 가치가 변하는데, 현재주의는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가치를 모든 시대가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 가치와 등치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주의는 역사학의 근본적 목적과 배치된다. 역사학은 본래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현재주의는 현재의 도덕적 틀로서 과거를 규정하고 판단한다. 이러한 이유에서(비록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역사학자들은 현재주의를 경계하고 역사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현재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역사주의가 과거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역사주의는 역사적 인물의 행위를 당시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완용의 역사 또한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20세기 초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당시 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완용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 선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등의 제국주의자, 히틀러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입장에서 이완용을 가르쳐야 할까? 혹은 제 3의 방법이 있는 것일까? 국내외적으로 논쟁적인 역사적 주제를 역사 수업 시간에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있어 왔다.

   이에 대한 선행연구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논쟁적인 역사적 주제의 분류 및 범주화, 둘째, 각각의 논쟁적 주제와 관련된 역사수업 자료 소개 및 설명, 셋째,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수업 원리가 그것이다. 수업 원리적 측면에서, 많은 선행연구가 역사 이론으로부터 빌려온 ‘역사적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원리를 중심으로 수업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이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게 도와주되, 자신과 다른 관점을 경청하고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서 고민이 되는 지점은, 위의 이완용에 대한 역사주의적 해석이 ‘하나의 다른 입장’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논의되어야 하느냐이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 때문에 역사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 시간에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교사들 자신이 논쟁적인 역사 수업을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도 있고, 통사 중심의 역사 수업에서 논쟁적 수업을 실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하다. 또한 민감한 논쟁적 역사주제의 경우 학생, 학부모, 혹은 학교 관리자의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역사 수업에서 이완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역사교육 전공자로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하려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단계로서 세실 로즈(Cecil Rhodes, 1853~1902)라는 인물에 대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인식 양상을 조사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인물은 영국 케이프 식민지의 총리를 역임한 사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국 제국주의 정책의 최선봉에 섰던 사람이다. 이 인물은 최근 가장 논쟁적인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으로 대두하였다. 그 출발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교였다. 2015년 이 대학에 세워져 있던 로즈의 동상 철거 운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해당 동상이 철거되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로즈 동상 철거운동이 일어났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로즈나 이완용과 같은 논쟁적인 과거 인물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이들을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으며, 그 입장의 근거로 어떠한 논리와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때에 따라선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한 답은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로부터 나올 수 있다.

윤종필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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