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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최대다수의 행복에 기반한 이동권이 행복한가?

기사승인 [220호]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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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시위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시위를 비문명적인 시위로 규정하며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 발언의 부당함과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장애인 단체와 많은 언론에서 제기하였기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여당이 될 공당 대표의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은 장애인을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다수의 ‘시민’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장애인의 이동권을 단지 ‘소수’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분노와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그동안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접근 가능한 물리적 환경의 보장에 초점을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다른 중요한 논의는 거의 부재한 상황이다. 그것은 장애인의 이동권 문화에 관한 논의이다. 예를 들면 “출퇴근 시간에 장애인은 저상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는가?”, “승객으로 가득 차 있는 버스나 지하철에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하려고 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와 같은 물음이다. 실제로 출퇴근 시간대에도 저상버스나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은 이용하려고 하지 않거나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지하철이나 저상버스를 장애인도 탈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 여기면서도 혼잡한 시간대에는 탑승을 원하지 않는 이중적인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잡한 시간대에 저상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면 장애인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만 한다. 더욱이 승객으로 가득 차 있는 저상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할 때의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은 더욱 뚜렷해진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이중적 시각은 제도적 측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의 저상버스 이용을 위한 ‘저상시내버스 예약시스템’ 소개 홈페이지에는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7시~9시, 18시~20시)’와 ‘심야시간대(12시 이후)’에는 저상버스 예약불가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에 관한 문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장애인은 왜 그 시간대에 저상버스를 예약하면 안 될까?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대다수인 시민들의 불편을 미리 예방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모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혼잡한 시간대에 이용하려는 장애인은 배제되고 있으며, 제도를 통해 당연한 상황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영국은 장애인 이동권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킨 법적 사례가 있다. 2012년 일명 ‘Paulley vs. FirstGroup 사건’으로 휠체어 이용자인 Paulley는 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타지 못했다. 왜냐하면 버스 운전원의 이석 요청을 휠체어 공간에 있던 여성이 거부해 승차를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고 계획했던 열차를 놓쳐 한 시간이나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후 Paulley는 버스 회사인 FirstGroup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최종 승소하여 5,500파운드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이 판결은 버스 내 휠체어 사용 공간을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하려 할 때 운전원이 다른 승객에게 공간을 비우도록 요청하는 수준 이상으로 강제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잠시 운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거에 근거하고 있다. 그 후 교통부는 ‘공공서비스 교통수단 규정 1990’을 통해 휠체어 공간에서 불합리하게 이동을 거부하는 승객을 버스에서 강제하차 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또한 장애인의 휠체어 공간사용에 관해 운전자와 승객에게 요구되는 행동 지침 수정과 그에 대한 대중 인식 캠페인 및 버스의 안내 개선 활동, 휠체어 승객 이용 시 다른 승객의 이동에 관한 운송 조항 및 장애 인식 교육 모범 사례 지침의 반영과 같은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이러한 영국의 사례는 대중교통시스템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이 제외될 수 없고 오히려 더 우선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저상버스 예약불가 시스템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장애 당사자로서 이번의 장애인 이동권 논란을 보면서 독일 유학시절에 경험한 일이 스쳐 지나갔다. 독일의 버스는 100% 저상버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거의 타지 못했던 버스가 지하철과 함께 나의 제1의 이동수단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평소처럼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아침 첫 수업이라 버스 안은 학생들로 가득 찼고 이내 몇 정류장을 지나자 만석이 되었다.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정차했을 때 양손 보행기기를 사용하여 이동하는 한 노인이 버스를 타려고 서 있었다. 그러나 버스 안에는 더 이상 탈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노인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고 어떻게 해야 할지 깊게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때 버스 안에 있던 몇 명의 학생들이 그 상황을 보고 ‘우리 내리자’라는 말을 하고는 버스에서 내려 뛰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내려서 생긴 공간으로 인해 노인은 탈 수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독일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동권의 의미를 분명하게 느꼈다. 서로의 권리가 충돌될 때 최대 다수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사회의 소수자의 권리보장은 곧 우리 모두의 권리 보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이동권 논의는 2001년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의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하지만 2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이동권에 관련된 이동 시스템, 이동 문화, 이동 환경은 최대다수인 비장애인의 이동권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것은 장애인 이동권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논의와 시각은 ‘시민적 권리’가 아니라 여전히 사회적 약자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예산과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한 정책 정도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공당 대표의 말을 뒤집어 본다면 최대다수에 기반한 이동권 사회에 불편을 끼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를 문명화된 사회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다문화적인 다양성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그것은 다양성을 이루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그들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모두가 행복해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동권에 대한 논의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제는 장애인의 이동 보장에 관한 논의가 물리적인 시스템에 관한 논의를 넘어 영국과 독일의 사례처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정당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과 시민연대에 기반한 이동권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김용진 강남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강사 장애우권익문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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