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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 비관과 낙관 사이에서 희망을 보는 방법

기사승인 [221호] 20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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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엘 셰럴,『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창비, 2022.

   
  △ 사진 = YES24  

   기후변화가 다양한 요인에 의한 지구 평균 기온의 변화를 일컫는 용어라면, 지구온난화는 산업혁명 이후 인위적인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한 기온 상승을 가리킨다. 2000년대 이후 이러한 용어가 근 백여 년간 인간의 행위가 초래한 변화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지질학적 용어와 더불어 기후 위기(climate crisis)나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 전에 없던 규모의 산불과 자연재해의 증가,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등 국내외에서 연일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 소식이 들려오면서 우리는 위기라는 말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극단적인 기상이변을 더욱 자주 보게 될 것이라 입을 모으며 손을 쓸 수 없는 임계점을 넘기 전에 탄소배출을 규제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대책 마련은 더디기만 하다.

이 책의 저자이자 환경운동가인 대니얼 셰럴은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그 문제’라고 지칭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한다. 일례로 그는 스스로를 환경보호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2019년 뉴욕 주에서 통과된 기후정의 법안의 캠페인을 주도했던 활동가가 그렇게 말하니 이게 무슨 뜻인가 싶다. 누군가에게 ‘그 문제’는 허구일 뿐이거나 여전히 먼 나라의 일이며, 돈벌이의 수단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쯤으로 취급되는가 하면, 심각성을 인정하는 경우조차도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그 문제’의 실상에 한 꺼풀의 거품을 씌워놓으며 무심한 낙관과 냉소를 생산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 문제’를 지시하는 용어들은 “누구도 전체 그림을 직접 본 적이 없는 모종의 시스템 안에서 각자의 입장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부적”이 된 듯하다.

   대니얼 셰럴은 우리가 ‘그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서구의 인식론적 전통에서 찾는다. 요컨대 ‘그 문제’를 하나의 객관적 실체로서 바라볼 수 있는 주체의 자리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티머시 모턴의 초객체(hyperobject) 개념이 ‘그 문제’를 적확하게 지시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 문제’와 관련하여 ‘외부’란 없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그 문제’는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하나의 거대한 객체로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더라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은 ‘그 문제’ 내부의 객체이자 행위자로서 존재한다. 자연의 외부에서 자연을 대상화하는 주체로서의 인간관, 자연을 인간에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자연관을 버리지 않는 한 ‘그 문제’는 쉽게 정의되지도 않으며 합의하기도 어려운 사회‧정치‧경제적 난제의 단면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그가 말하는 진실이란 우리가 논쟁하며 떠드는 와중에도 종말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대니얼 셰럴은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구가 분명한 종말을 향해 가고 있음을 예민하게 감각해온 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그 문제’의 진짜 문제는 지구가 보여주는 가시적인 위기의 징후가 아니라, 분명한 종말에서 희망을 찾는 일이다. 시한부에게 남은 삶이 덧없어지듯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역시 종말을 향해 가는 비관적 서사 앞에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그가 이 책을 미래의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쓴 것은 분명한 비관과 무심한 낙관 사이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나름의 시도다. 이 편지를 쓰며 그는 비로소 무감각과 냉소를 넘어 ‘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그 문제’의 실상을 깨달을수록 그는 이 편지의 수신자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고민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자기 마음속의 무심한 낙관과 싸우며 기록한 이 편지의 낱장은 그지없이 연약하지만, 그 연약한 현재의 기록‘들’이 결코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비참한 과거가 될 수는 없음을. 미래란 현재와 전혀 다른 장소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 편지에 기록한 현재가 모여 미래와 만나는 것임을.

임정균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동국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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