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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죽어서도 나갈 수 없는 곳

기사승인 [221호] 20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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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다음 영화  

   1920년대의 중국이라는 배경을 감안했을 때 송련은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그런 그녀도 가난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떠밀리듯 진씨 가문의 넷째 부인이 된 송련은 가장 먼저 하인을 배정 받고 발안마를 받는다. 머지않아 송련은 발안마가 그날 밤 진씨와 동침하기 위해 선택된 부인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밤 내내 붉게 켜진 홍등과 발안마, 즉 진씨에게 선택 받았음을 증명하는 것들은 곧 권력이 되고, 가법은 집에 들어온 외부인을 천천히 구슬리며 길들인다. 얼핏 굉장한 대접을 받는 듯 송련은 결혼 후 며칠은 크게 거슬리는 점 없이 지내지만 그 생활은 곧 끝난다. 집안의 모든 것이 그녀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송련이 지켜야 하는 규칙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상들의 초상화에 대고 문안 인사를 해야 하며 부인들은 모두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해야 한다. 식사 메뉴는 전날 진씨와 동침한 부인만이 정할 수 있다. 이밖에도 수많은 규칙들이 송련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가법은 사람을 가려가며 작동된다. 그 예로 안아는 송련의 하인임에도 자신의 방에 몰래 홍등을 달아놓았으나 이 사실에 크게 분노하는 이는 송련 뿐이다. 그녀는 집안사람들의 앞에서 가법에 따라 처리할 것을 주장하지만 다들 시원찮은 반응을 보인다. 가법이라는 구조 속에서 단순히 자손 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여성들에게 위계가 그리 중요할 리 없다. 하인인 안아가 자신의 방에 멋대로 풍등을 단 것은 분명 가법을 훼손한 것이나 이는 여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를 흔드는 일이기에 모두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한 진씨 가문 부인들의 임무는 언제든 남편을 ‘모실 수 있도록’ 얌전히 처소를 지키며 자손을 생산하는 것이 전부이기에 사실상 사람이 아닌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송련이 안아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은 안아와 자신의 경계를 확인할 수 없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안아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며 죽음을 맞고 가법은 그 죄를 송련에게 뒤집어씌운다. 안아의 죽음 이후 더욱 쓸쓸하고 괴로워진 송련은 또 한 명의 여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술에 취해 매산의 불륜을 발설한 것이다. 그리고 눈이 내리던 날 이른 아침, 매산은 입이 틀어 막힌 채 집의 꼭대기로 끌려간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쌓아올려진 집 꼭대기에는 가법을 어긴 이들을 처형하는 작은 방이 있다. 죽음은 언제나 위에서, 또 곁에서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집에 들어온 이상 그들의 소망이나 꿈, 욕망 같은 것들은 그들을 미치게 만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된다. 결국 매산은 죽고 송련은 미쳐버린다.

   매산의 죽음으로 송련이 미쳐버린 까닭은 죽음, 그것도 살인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목격한 까닭도 있겠으나 안아와 마찬가지로 매산 역시 자신과 별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녀의 죽음을 목격함으로써 자신 또한 아무렇지 않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극심한 무력감과 공포로 인해 미쳐버린 것이다. 그러나 미쳤어도 송련은 집에서 나가지 못한다. 마치 유령처럼,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집 안을 배회할 뿐이다.

   한편,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진씨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하는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나 관객은 영화 내내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목소리만으로 집안사람들을 통제한다. 이처럼 진씨는 가법 그 자체로 보인다. 그러나 바깥세상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고 하늘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높게 쌓아올려진 집은 그 대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가 가주가 되기 이전에도 여자들은 꼭대기 방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집 한쪽 벽에 빼곡히 걸려 있는 조상들의 초상화는 그 역시도 수많은 자손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여버릴 수 있는 것도 가문과 함께 오랜 역사를 지내온 가법이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독은 진씨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조상들과 구별될 특정 요소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지 않으며, 가법의 실체는 혐오와 폭력을 가감 없이 휘두를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탈출할 방도는 없다. 가법은 그를 압도하는 거대 권력의 개입 없이는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거대 권력과 영화 속 가법이 무엇이 그리 다를까. 우리는 이미 타의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많은 이들을 알고 있고 세상이 미쳐버렸다는 말을 이따금 뱉는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 적 없다. 다만 우리는 죽었거나 죽은 것 같은 사람들에게서 문득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권석희 편집위원

<저작권자 © 동국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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