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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리뷰] 운명에서 미래로 나아가기

기사승인 [221호] 20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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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해보자. 사랑하는 연인이 곁에 있고 나의 어려움과 상처는 빠르게 극복될 것이다. 일상은 가끔 요란하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평온하며 나는 연인과 평생 사랑하며 큰 탈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보장된 삶. 누군가는 평생 그런 삶을 갈망하며 살겠지만 채린은 그렇지 않다. 그 까닭은 그녀가 정말 로맨스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인 채린의 몸에 빙의된 <살아남은 로맨스>의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달갑지 않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소설이 정해놓은 흐름에 따라 사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설은 채린이 남자주인공인 재하에게 고백을 받고 행복할 일만 남게 된 순간에 돌연 로맨스에서 좀비 아포칼립스로 장르를 바꾼다. 채린이 죽으면 모든 상황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녀는 몇 번이고 죽음을 반복하며 모든 상황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방법을 고민한다. 채린에게 재하 외 대부분의 인물은 그림자로 보이기에 어두컴컴한 세상 속에서 그녀는 고군분투하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채린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좀비에게 먹히기 직전,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손을 잡고 달린다. 채린이 가장 불행한 순간에 그녀를 살린 것은 재하가 아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엑스트라 ‘X’다. 덕분에 채린은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지만 이내 X는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채린은 절망에 빠지는 대신 다시 한 번 죽음을 선택한다. 이번에는 재하가 아닌 X를 살리기 위해서.

   X를 만나기 위한 선택은 상황을 전혀 다른 전개로 끌고 나간다. 채린은 이제 정해진 대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또한 기존 소설대로라면 단순히 채린을 욕하고 따돌리는 것이 역할의 전부였을 인물들 앞에 색다른 상황이 펼쳐지자 그들은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살고자 하는 열망과 두려움이 이들에게 생동감을 부여한 것이다. 엑스트라의 욕망에 관심을 갖는 독자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 관심을 가져야만 그 의미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와 욕망을 소거당한 채 오로지 채린과 재하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치장하는 장치로 활용되던 인물들은 자신들에게도 세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로맨스는 주인공의 전유물이 아니며, 한 세계의 유일한 주인공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나의 삶이라 정해진 이야기를 찢고 나오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가 필요하다. 작품 속 인물에서 한 사람으로 거듭나야하기 때문이다. 채린은 희생당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죽는다. 채린이 선택한 모든 죽음의 바탕에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은 그녀가 로맨스라는 소설의 장르가 만들어낸 욕망이 아닌, 진정 자신이 바라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전의 삶에서 살아남은 친구들 또한 기억을 갖고서 함께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채린 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도 작동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혼이 있는 자만 처음으로 돌아가는 힘을 가진다. 영혼이란 행복해지려는 의지와 같다.”

   정해진 자리를 찢고 나온 이들은 이제 다른 인물들이 갇혀 있는 곳에도 균열을 낼 것이다. 누군가 멋대로 정해놓은 운명이 아닌 알 수 없는 미래로 같이 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며 1부는 마무리된다. 정해진 행복을 좇으면 정해진 만큼만 행복할 수 있다. 그 길을 따라갔다면 채린의 세계는 언제까지나 새까만 그림자로만 가득했을 것이다.

   진정한 해피엔딩은 현실이 마냥 안온한 것처럼 눈을 가려놓는 것이 아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이 마침표를 찍은 이후에도 인물들이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그 삶이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이라 하더라도, 그와 내가 닮아 있음으로 이어져 있다고 느낄 때 진정으로 행복을 바라게 되고 또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권석희 편집위원

<저작권자 © 동국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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